친구는 내게, 그건 개좆같은 이별 아니냐고 했다.
"야, 남겨진 사람만 불쌍하고. 그 사람은 슬픔 속에 남겨지는 거잖아. 개좆같은 이별인 거지."
"그런가? 난 좋았는데."
"뭐가? 헤어진 지 아직 일주일도 안 지났는데 뭐가 좋다는 거야?"
"그냥. 한 때를 같이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한데 난."
"네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거 아니야?
"아니 겁나 좋아했지. '겁나'라는 단어도 걔 영향으로 엄청 쓸 정도였고 하루 종일 걔한테 선물해줄 글들을 아이폰 메모장에 담고 다녔으니까. 뭐, 이 정도면 겁나 좋아한 거 아니냐?"
"몰라. 근데 난 네가 이해가 안 가. 네가 한 이별은 좋은 이별이었단 거야?"
"모르겠어. 그냥 그래."
"그게 뭐야.."
"몰라, 이번 헤어짐은 그냥 그래. 뭔가 떠나보냈다기 보단 그냥... 그래."
"아프진 않아? 걔 생각은 안 나?"
"나지, 하루에 종종? 몇 번은 생각나. 한 번은 그냥 생각났어. 그리고 또 한 번은 일부러 생각도 해봤어."
"왜 일부러 생각하는 거야? 아니, 그래서 상실의 아픔 뭐 그런 건 없냐고."
"음... 응. 그냥 서로 이별을 대비하면서 연애했던 거 같아. 헤어짐을 알고서도 만났던 것 같고, 우리가 비틀린 이유도 어느 정도 거기에 있었다고 봐. 근데 결정적인 건 내가 충분히 사랑을 줄 태도가 형성이 안 되어있었던 것 같아."
"또 네 탓이네. 아, 그만 좀 하라니까?"
"아니, 내 탓이 아니고 정말이야. 난 연애 내내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나 자신을 혐오하고 나 자신을 사랑했어. 근데 집착도 했고. 잘 몰랐고 잘 안 됐어. 그냥 그게 다야. 준비가 안 됐었어. 처음엔 돼있는 줄 알았는데,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수록 내 내면도 들여다보게 되잖아? 근데 사실 아니었던 것 같아. 사귀기 초반엔, 그 친구한테 나에게 감사하다 그랬었어. 나 자신 스스로 충분히 너에게 감사하고 좋아하고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나 스스로 대견하고 감사하다고. 근데 아니었어."
난 자신을 탓하기보단 다음에 내딛을 발걸음에 대해 생각했다.
"진짜 이상하네... 넌 그런 곳에 똑 부러진 앤 줄 알았는데."
"네 말대로 우린 다 애니까. 나도 애야. 몰랐고 무시했고 지나쳤어. 그러다 보니까 그냥 이렇게 된 거지. 그 친구의 마음이 식게 내버려 둔 건 결국 나야. 그리고 그 친구를 힘들게 했던 것도 결국 나였고. 서로 그랬어, 그냥."
"그럼 개좆같은 이별은 아닌 거네? 네 말대로라면."
"그렇지, 난 다 알고 있었어. 우리가 이렇게 될 것도, 이렇게 되는 중이라는 것도, 이렇게 될 과거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
"그 친구가 나에 대한 감정이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다만, 그 친구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 같아. 나는 의지만 충만했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난 항상 그랬다. 관계를 지키고 싶었고, 보호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질 필요도 없는 온갖 책임들로부터 나 스스로를 괴롭혀왔고, 짓눌렀다. 상대에 대한 배려를 너무 하던 나머지 나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고, 관계의 방향을 가리키지 못했으며 앞을 보지 못했다.나의 하루 중에 그 친구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무 좋아했었다. 미래를 그리려 애썼고, 함께할 수만 있다면 나를 태워 빛을 뿜고 싶었다.
그 친구는 내게 말했다.
'난 너와의 미래가 안 그려져.'
실은 나만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걸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우리는 정확히 말하면, 우리 만남들 중 어느 순간들에서 사랑했고 결과적으로는 사랑하지 못했다.
사랑했을까? 만남 뒤 이별에, 이 질문은 항상 맴도는 것 같다. 그 친구에게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못 들어봤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그 친구의 웃음을 보았고, 소리를 들었고 온기를 품었었다. 잠시나마 비를 피하게 해 주었다. 볕이 들 때까지 옷을 빌려주었다. 그걸로 되었다.
"야, 그래. 다음엔 더 좋은 사람 만나."
나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다음? 크크. 다음은 몰라. 그냥 나에게 집중할래. 글이나 쓰련다."
"그래, 그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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