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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글

[잡문] 대화의 결

by 도묵 2021.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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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ed by @carrotcake

"어떻게 그런 거에 기분 나빠할 수 있어?"

대화의 결이 깨지면서 우리는 우리 사이에 벌어진 틈 사이로 소금물을 끼얹었다.

 

앗. 따가. 서로 너무 따가웠다.

아린 기억으로 남을 싸움은 흰 도화지 위 검은 잉크처럼 짙게 번져만 갔다.

 

"너한텐 별게 아니어도, 나한텐 별 거야. 그럴 수 있는 거잖아?"

"그래, 그럴 수 있어. 인정해. 근데 나를 대하는 태도는 왜 그런데?"

"넌 그렇게 꼭 일일이 다 따져야겠어? 내 태도가 이런 건 나도 기분 나빠서야."

"하.. 그만하자."

 

다름을 인정하는 것도 노력이라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그건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이 식게 되면 자연스레 노력의 불씨도 꺼진다는 것을 우린 깨달으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정말 그만하는게 좋을 것 같아."

"그래, 그러는게 좋을 것 같아. 서로 안 좋은 모습들이 계속 나오네. 넌 미안해하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싫어하고, 나는 그런 너를 자꾸만 통제하고 싶어 하고. 그냥 여기서 멈추자."

 

멈추자는 얘기가 나오니, 이제 이게 마지막 통화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하지 못했던 말들을 내뱉고 싶어지는 마음에 불을 붙였다.

 

"한 달 동안 엄청 힘들었어. 그리고..."

"그만 얘기해. 여기서 뭘 더 얘기해서 날 더 미안하게 만들겠다는 거야. 이후의 말들은 각자 속으로 하는 거지. 책임지고 안고 떠나자, 그냥."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불이 붙은 내 입에 더 이상 들이킬 수 없을 만한 양의 물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흡사 물고문 당하듯 내 입은 틀어박혀졌고, 동시에 불씨도 같이 꺼졌다.

 

대화의 결은 우리 마음의 온도를 증명해줬다. 결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잡고 있던 그 무언가들을 놓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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