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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글

[잡문] 네가 듣는 노래가, 내 앞에서 흥얼거리는 노래들이 슬픈 노래들이 아니라 이젠 밝은 노래가 되어갈 때 나도 신나

by 도묵 2020.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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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ed by @thecminus

 

1. 무의미한 이유 찾기

 

사랑을 한다. 사랑이기 때문에 그냥 한다. 이유는 딱히 없다. 내가 지금 사랑하는 이유를 찾으려면 심해에 버려진 내 일기장을 찾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 이유를 갖다 붙일 필요조차 없는 것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난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는 것을 보는 것에 무슨 생각이 필요한가? 그냥 느낄 뿐이다. 가끔 이 사람이 왜 내 옆에 있을까, 왜 나를 만날까 하는 생각들이 스쳐 지나갈 뿐 그것조차도 사랑의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질문이 되지 못한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냥 사랑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되고도 남는다.

 

2. 도착이 중요한가, 과정이 중요한가?

 

소망하는 도착지에 다다르기 위해 사랑의 과정을 소홀히 하지 말자.

사랑은 과정이면서 결과다. 그 누구도 사랑의 도착지는 모르지 않는가?

누구에게는 날짜가 기준일 수도, 누구에게는 진도가 그 기준일 수도, 누구에겐 결혼이 그 기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기준치에 도달하지 못한 인연들을 사랑이 아니었다고 치부할 수 없다. 기준만으로는 사랑을 재단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우리는 도착지를 정해놓고 사랑을 시작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 우리가 나아가는 그곳이 곧 길이 되고, 우리가 머무는 그곳이 도착지가 아닐까.

그래서 그리 조급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닐까? 어쨌든 자연스레 가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해있을 테니. 우린 그 과정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서로를 사랑하면 그 도착지가 어디든 그 또한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3. 맞춰가는 것

 

다름에 상처 받을 때도 있다. 너무 다른 부분들은, 서로가 같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 마음은 조금씩 자신의 마음에 흠집을 낸다. 그 틈으로 불안이 들어오고 난생처음 경험해보는 이질감의 고통에 빠질 수도 있다.

'얘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왜 이랬던 걸까?'

뭘 맞춰가야 하는 건지 맞춰가는 것조차 싫을 때도 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정말 쉽지 않은 것이다. 특히 서로에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땐 말이다. 웃고 있을 때는 다 좋아 보이기 마련이다.

후에 그러지 않을 때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불편한 것들을 다루는 데에 능숙해야 한다. 불편한 상황과 감정으로부터 발화하는 싸움의 불꽃을 말이다. 불꽃을 처음 보는 원시인 마냥 불에 함부로 손을 대거나 다른 곳에 불을 옮겨 붙이면 큰일이다. 그래서 첫사랑은 대부분 실패한다. 아무 데나 불을 지르고 튀니까. 상대는 그걸 수습하느라 진땀을 빼고 그 과정에서 힘이 들고 지쳐버린다.

몇 번의 연애를 경험해보았다면 이제 불을 조금씩 다룰 수 있게 된다. 가끔은 억지로 불을 끄려하지 않고 비가 올 때를 기다리는 법도, 둘이 앉아 그 불꽃을 가만히 마주 보는 일도, 급하게 손으로 불을 끄려는 행동들도 줄어들게 된다.

왜냐면 그 불꽃을 다루지 못하면 관계는 금방 잿더미로 변해버리는 꼴을 봐왔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보거나 심지어 본인이 느꼈을 수도 있고, 열심히 쌓아온 신뢰와 사랑의 기틀도 불길에 다 타버리는 것을 목도했을 수도 있다. 싸움의 바람이 불고 불길이 꺼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기치 못한 분위기와 감정에 불이 쉽게 잡히지 않고 활활 타오를 때 말이다. 그럴 때는 그 불길을 잠재우려 하지 말고 좀 멀리 떨어질 필요가 없다. 자칫 잘못하다간 집이 아니라 사랑의 주체인 둘이 타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둘의 흔적은 다시 남기고 쌓아가면 되지만 사랑의 주체가 사라진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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