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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단편] 볼륨

by 도묵 2021.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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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ed by @carrotcake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남들 다 이런 소리로 듣는데, 그쪽만 크게 듣고 있던 거였어요."

"그래요?""네, 그러니까 약 끊지 말고 꼭 드셔야 해요. 지금은 이 볼륨이 적응이 돼서 그런 거예요. 적응된 소리로 듣기 시작하니까 정상인 줄 아는 거지만, 약 끊으면 더 심해질 수도 있어요."그래, 그런가 싶었다. 남들 다 이런 정도로 소리를 듣고 있었다니. 나는 남들의 시선이나 말과 행동에 너무 큰 신경을 쓰고 있었나 보다. 적응기가 어느 정도 필요했고 나는 그 적응기를 지나고 있었다."네, 알겠습니다."언제 끊어야 할지 모르는 약을 매일 먹는다는 건 메마른 땅 위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다.병원에서 집에 오는 길에 간단한 요기거리를 샀다. 그러곤 집 근처 물길이 있는 곳에서 바람을 좀 쐬다 왔다."무서워서 그랬어.""너 때문에 내가 병원 다니는 걸까봐?""..."
넌 대답이 없었다. 왜 내가 병원에 다니는지,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지 않는 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끈이 떨어져 나가고 있었는데.

"너 때문 아니야. 그냥 내가 아픈 건데 뭘. 신경 쓰지 마."

아니, 사실 신경 좀 써줬으면 했다. 어디가 아픈지, 혹시 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주었으면 했다. 사실 난 너 때문에 가장 힘들었었는데. 우리에게 미래는 없었다. 없던 미래에 송곳 하나 뚫어 나아가 보자 했었다. 근데 그게 잘 안 되었다.

 

어떤 날엔 네가 그랬다."너와의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아.""나도 그래.""근데 어떻게 연애를 하겠어?""아니, 난... 그런 게 아니라."난 변명을 하고 있었다.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만을 바라보고자 했다. 그래야 우리 관계에 조금이나마 숨을 붙여놓을 수 있었으니까.오늘따라 네가 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병원에 다녀오던 날과 이렇게 혼자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릴 땐 말이다.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너무 생각이 많더랬다. 그랬다. 난 너와 만날 때에도 생각이 많았고, 깊었다.그 덕에 우린 좀 더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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